[스포테이너즈=고초록 기자] 프로레슬링을 주제로 한 단편영화 '쿠데타(COUP D’ÉTAT)'가 4년 만에 부활한 미쟝센단편영화제의 본선에 진출했다. 화려한 링 위의 격돌을 예술적 언어로 풀어낸 이 작품은, 현실과 쇼의 경계를 허물며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연출을 맡은 김경미 감독은 "열패는 분노가 되고, 분노가 환각이 된 순간, '쿠데타'는 쇼와 현실이 뒤엉킨 링 위로 몸을 던진다. 절대 따라 하지 마세요."라는 소개 문구로 작품의 세계를 압축했다.
'쿠데타'의 가장 큰 특징은 실제 프로레슬러들이 직접 출연했다는 점이다. 주연에는 프로레슬러 진개성이, 그리고 시호·이랑·구스타프 등이 함께 출연했다. 이들은 단순한 배우가 아니라 실제 링 위에서 싸우는 현역 선수들로, 영화 속 액션 시퀀스에 현실감을 더했다.
촬영 현장은 실제 경기장을 방불케 했으며, 강렬한 타격음과 숨소리, 관중의 반응이 그대로 살아 있는 현장형 사운드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김경미 감독은 프로레슬링의 폭력성과 예술성, 허구와 진실이 교차하는 경계에서 인간의 분노와 욕망을 포착했다.
김 감독은 소개글에 "영화는 불안하고 어렵지만 즐겁다. 촬영 중 카메라가 부서졌을 때도 오직 '다시 찍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창작의 집념을 전했다.
또한 "거칠지만 섬세하고,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작품에 마음이 간다. 언젠가 잊히는 얼굴과 장소, 분위기를 서사로 연결짓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 이하 관객과의 대화 정리본 ◆
사회자: 오늘 자리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함께하신 배우분들과 스태프분들도 소개해 주세요.
김경미 감독: 안녕하세요. 영화 '쿠데타'를 연출한 김경미입니다. 함께 출연한 배우분들을 먼저 소개드릴게요. 진개성 선수, 이랑 선수 오셨습니다. 그리고 함께한 스태프분들도 인사드릴게요. 조연출 홍세련, 프로듀서 이은교, 촬영감독 전병주님입니다.
사회자: 혹시 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은 분이 있을까요?
김경미 감독: 네, 이 영화를 제작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신 PWS의 이희정 이사님을 꼭 소개드리고 싶어요. 어려운 시기에 흔쾌히 협력해 주셨습니다.
▶ 작품 시작 계기
사회자: '쿠데타'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경미 감독: 처음엔 인간 내면의 어두운 에너지가 육체적 폭력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구상했습니다. 그러던 중,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레슬러 출신 배우 바티스타의 사진을 보고 영감을 받았어요.
어릴 적 WWE를 즐겨보던 기억이 떠올랐고, '이 소재로 하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겠다' 싶어서 프로레슬링을 영화의 중심에 두게 됐습니다.
▶ 실제 레슬러 섭외 과정
사회자: 실제 프로레슬러들과 작업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김경미 감독: 영화 기획 시기가 코로나와 겹쳐서 많은 단체들이 활동을 거의 중단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과연 협조가 가능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한국에는 프로레슬링 단체가 많지 않거든요.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단체가 PWS였고, 메일을 보냈더니 이희정 이사님께서 "이럴 때일수록 함께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 하시며 흔쾌히 응해 주셨어요. 결국 출연진과 훈련생 모두 PWS 소속 선수들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 촬영 방식과 레퍼런스
관객 질문 1: 영화 초반 워닝 표시나 선수 등장 장면이 실제 프로레슬링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연출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김경미 감독: 영화적인 연출보다는 WWE 방송 형식을 참고했습니다. 오프닝은 백스테이지 느낌을 주기 위해 핸디캠으로 촬영했어요. 선수들이 카메라를 위협하거나 관객을 도발하는 연출을 통해 과거 WWE를 보던 세대가 느꼈던 감정을 되살리고 싶었습니다. 중간중간 사다리, 의자 공격, 마지막 스피어 등도 실제 기술을 참고했지만 과하지 않게, 레슬링 팬들이 "이건 알아!" 하며 즐길 수 있도록 조율했습니다.
사회자: 참고하신 특정 선수나 기술이 있었나요?
김경미 감독: 어릴 때 좋아했던 선수인 바티스타, 레이 미스테리오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처음엔 언더테이커의 콘셉트도 고려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악역 캐릭터들의 표현을 중심으로 잡았습니다.
▶ 캐스팅과 기술 합의
관객 질문 2: 주연으로 진개성 선수를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경기 기술은 어떤 식으로 합을 맞췄나요?
김경미 감독: PWS의 대표 선수는 시호 선수지만, 주인공을 시호로 정하면 홍보성으로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어요. 또 '쿠데타'라는 인물은 레슬러답지 않은 비주얼이 필요했습니다. 가면을 쓰고 움직일 때 느껴지는 답답함, 그 안의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진개성 선수라고 판단했죠.
기술은 모두 선수들이 직접 합을 맞췄습니다. 제가 요청한 몇 가지 장면 포인트를 전달하면, 선수들이 실제 쇼를 준비하듯 구성해 주셨고, 리허설을 거치며 조금씩 수정했습니다.
▶ 제목의 의미와 경고 문구
관객 질문 3: 제목 '쿠데타'의 의미와 영화 속 "따라 하지 마시오" 문구의 의도가 궁금합니다.
김경미 감독: 처음엔 임팩트 있는 이름을 원했어요. 마침 제 플레이리스트에서 지드래곤의 '쿠데타'가 흘러나왔고, 그 단어의 강렬함이 마음에 들어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정치적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의 본명은 '봉기', 링 네임은 '쿠데타'로 설정했습니다.
WWE 방송에서는 폭력적인 기술을 따라 하지 말라는 경고가 항상 나오는데, 저는 그것을 차용해 '내면의 폭력성'을 경고하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자존감이 낮고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는 인물이 폭력으로 감정을 해소하려는 위험을 상징하고 싶었어요.
▶ 엔딩 구성과 해석
사회자: 엔딩이 에필로그처럼 이어지는데, 어떤 의도로 구성하셨나요?
김경미 감독: 원래는 크레딧과 함께 붙일 생각이 없었는데, 30분 내외 분량으로 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결말에서 봉기(쿠데타)가 도망치며 끝나는데, '이 인물이 다시 링에 설까?', '다시 연습에 참여할까?’'하는 여운을 주고 싶었습니다.
▶ 경쟁 부문 소감
사회자: 이 부문은 최우수상을 선정하는 경쟁 섹션입니다. 감독님께서 생각하시는 '쿠데타'의 차별점은 무엇일까요?
김경미 감독: 사실 이런 자리에서 제 영화를 직접 어필하는 게 쑥스럽지만, '쿠데타'는 말 그대로 '몸으로 만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선수들이 몸을 갈아 넣어 만든 작품이에요. 쉽지 않은 소재를 단편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 자부합니다.
▶ 마지막 인사
김경미 감독: 오늘 이 GV가 4년 만에 열리는 미쟝센단편영화제 마지막 세션이라고 들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자리해 주신 관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실 7년 전, 제가 용산 CGV에서 미소지기로 일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근무하던 상영관에 제 영화가 걸린다는 게 믿기지 않고, 정말 영광스럽습니다. 오늘 이 시간을 평생 기억할 것 같습니다.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